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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6대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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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1 18:00  |  166.***.204.***

세계의 6대 살인마
 
 
1.빌리 더 키드 (1859.11.23~188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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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부시대에 가장 악명을 떨쳤던 킬러라고 합니다. 
본명 윌리엄 보니(William H.Bonney). 뉴욕 출생. 
21년의 짧은 생애에 21명의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본래 뉴욕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적에 양친과 함께 캔자스로 이주하였고, 아버지가 죽자 다시 뉴멕시코에 가서 살았다. 
13∼15세 때 어머니를 욕보이려 한 남자를 죽인 것이 악의 길에 빠진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카우보이가 되었는데, 1878년 자기가 속한 목장과 다른 목장과의 싸움(세칭 링컨郡의 싸움)에서  열세인 자기편을 이끌고 대단한 싸움 솜씨를 보여 총잡이로서의 용명을 떨쳤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무법자가 되어, 소도둑 같은 짓을 한 것으로 전한다. 
한때 보안관 S.P.F.갤럿에게 항복하였다가 간수를 죽이고 도망쳤으나, 끝내 갤럿에게 사살되었다. 
전설에는 그가 의적(義賊)으로 되어 있으나 근거는 없고, 도리어 잔인하고도 비정한 젊은이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아틸라 더 훈 (406년~4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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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갔던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 
406년-453년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훈족의 왕입니다. 
ROMAN EMPIRE라고 불릴정도로 전 유럽을 정복했던 무시무시한 정복자입니다. 그 당시의 유럽인들은 그의 예기만 들어도 집 대문을 꼭꼭 걸어 잠궜다고 전해질 정도입니다.

 
 
3.라스푸틴 (1872? ~ 19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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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왕립박물관에 있는 라스푸틴의 성기. 30cm가 넘는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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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엿보이는 눈을가진 라스퓨틴

1905년의 어느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이그나티예프(Ignatiev) 백작부인의 살롱에는 유난히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정치가들, 사교계의 여성들, 궁궐대신들을 비롯해 모두들 일찍부터 나와 그리고리 에피모비치 라스푸틴(Grigori Efimovich Rasputin)이라는 시베리아 출신의 유명한 수도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마흔한 살이었던 그는 러시아 전역에서 치유사이자 성자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라스푸틴이 도착하자,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의 얼굴은 못생긴 데다가 머릿결은 푸석 푸석했으며 체구도 깡말라 볼품없어 보였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괜히 왔다는 실망감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라스푸틴이 다가와 큼지막한 손을 내밀며 한 사람씩 악수를 했다. 악수를 하면서 그는 그들의 눈을 깊이 응시했다. 처음에는 약간 불안정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위아래를 살피며 마치 그들을 탐색하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표정이 변하더니 그의 얼굴에서 친절함과 따뜻함이 배어나왔다. 그는 약간 과장된 듯한 태도로 그곳에 있는 몇 명의 여인들을 포옹하기까지 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 변화에 모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망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던 살롱은 즉시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라스푸틴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깊이가 있었다. 그의 언어는 투박했지만 심오한 영적 진리를 담고 있었다. 그는 아주 단순한 말로 깊이 있는 진리를 설파했다. 모인사람들은 이내 촌스러운 모습을 지닌 그에게 편안함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갑자기 돌변하더니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들을 알고 있소. 나는 당신들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지. 당신들은 너무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종자들이오, ... 당신들이 걸치고 있는 이 좋은 옷들과 저기 저 장식품들은 해롭기만 할 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소,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는 법을 배우시오. 지금보다 더욱더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하오. 그래야 비로소 하느님이 당신들을 가까이 하실 것이오." 
라스푸틴의 얼굴에는 영감이 가득 넘쳐 흘렀고,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앞서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은 마치 예수가 성전에서 환전상을 내쫓을 때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라스푸틴은 다시 고요하고 상냥한 표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청중은 이미 그에게서 뭔가 신비한 느낌을 받은뒤였다.
다음날부터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살롱들을 돌아다니며 모인 사람들에게 민요를 부르게 하고, 그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춤은 낯설었지만 어딘가 자유로운 혼이 담겨 있는 듯 했다. 그는 춤을 추면서 청중 가운데 가장 매력 있는 여인들의 주위를 돌며 함께 춤을 추자는 눈빛을 보냈다. 그의 춤에는 차츰 관능적인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에게 빠져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그들의 귀에 대고 은근한 말을 속삭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뒤로 여러 달 동안 라스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렀다. 그는 그들에게 영적인 문제를 가르치다가 갑자기 돌변해 저속한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그는 죄를 짓지 않으면 어떻게 회개할 수 있는가, 구원은 오직 타락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정당화하곤 했다. 라스푸틴의 마력은 니콜라이 황제와 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에게까지 미쳤다. 생명이 위태로운 황제의 아들을 치유해준 일로 황제 부부의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된 그는 곧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알렉세이 황태자는 혈우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황제 부부의 신임을 얻게 된 라스푸틴은 그 비호 아래 러시아의 내정과 외교를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했다. 특히 황후인 알렉산드라에 대한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으로 황후는 라스푸틴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신봉했다. 독일 공주 출신이었던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의 말에 따라 친독파 귀족들을 주위에 두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러시아와 독일이 적국이 되자 몇몇 정치인은 황제에게 라스푸틴을 버릴 것을 충고했으나 그들은 황후의 미움만을 샀을 뿐 라스푸틴의 권력은 건재했다.

마침내 유스포프 후작과 푸리슈케비치를 비롯한 귀족들은 요승 라스푸틴을 직접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1916년 12월30일. 라스푸틴을 초대한 그들은 라스푸틴에게 독이 든 케이크와 포도주를 먹여 독살하려 했다. 라스푸틴은 그들의 예상대로 독이 든 케이크와 포도주를 먹었으나 죽지 않았다.(이것은 알콜성 위염을 앓고 있어 염산의 분비량이 적었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오히려 암살자들에게 케이크를 더 달라고 말했다. 공포에 질린 유스포프는 단도로 그를 찔렀고 다른 동료와 그를 묶으려 했다. 그때 갑자기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유스포프의 어깨를 움켜잡더니 견장을 북 뜯어내고는 비틀비틀 옆문쪽으로 걸어갔다. 공포에 질린 유스포프는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라스푸틴을 쏘고 그의 시체를 묶어서 네바 강의 얼음 구멍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나 라스푸틴은 다시 얼음을 깨고 강에서 기어나왔다. 하지만 결국 라스푸틴은 폐에 물이 들어가서 익사했고 시체는 2일 후에 발견되었다.

라스푸틴은 죽기 얼마전에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내년 1월 1일이 되기 전에 죽을것 같습니다. 만일 내가 귀족들에게 살해된다면, 그들의 소는 나의 피로 젖을 것이며 25년동안 그 피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나의 죽음을 가져온 자가 폐하와 친척 관계인 사람이라면, 폐하의 자녀와 친척 어느누구도 2년 후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라스푸틴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이외에도 농민에게 죽음을 당한다면 제국은 1천년 이상 번성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스푸틴은 귀족들의 손에 죽음을 당했고 이후 러시아 제국은 잇단 혁명을 통해 무너지게 된다. 황제 일가 역시 볼셰비키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4.잭 더 리퍼 (면도날 잭) (19세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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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그려진 잭 더 리퍼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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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니뎁 주연의 영화 프롬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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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영국의 화이트 채플에서 5명의 여자를 죽인 수수께끼의 인물. 
그는 8월 31일부터 11월 8일에 걸쳐 5명의 여자를 살해하였다. 
그녀들은 모두 기학적인 광인에 의해 죽었다. 이 광인은 사람이 왔기 때문에 
도중에 달아난 한 건을 제외하고는 시체를 갈라 내장의 일부를 꺼냈다. 
마지막으로 살해한 메어리 켈리의 경우엔 거의 인간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사라졌다. 

잭 더 리퍼가 누구였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추론들이 있다. 그 무엇도 확증은 없지만, 대개 일치를 보이는 것은 그가 최후의 살인 이후 자살했다는 가정이다. 그처럼 기괴한 욕망과 망상에 사로잡힌 인간이 '기학살인'이라는 폭주기관차를 출발시킨 이상 결코 그 행위를 멈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망상의 벽에 충돌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 런던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 넣었던 살인마 `잭 더 리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1888년 런던에서 최소한 매춘부 5명을 잇따라 살해했으나 끝내 경찰의 추적을 피한 영국판 `살인의 추억'의 주인공인 잭 더 리퍼의 이름을 적어 놓은 메모가 발견됐다고 가디언 신문이 13일 보도했다.

런던경찰청의 블랙박물관이 공개한 이 메모는 당시 잭 더 리퍼를 추적했던 도널드 스원슨 경감이 상관인 로버트 앤더슨 경찰차장이 쓴 회고록 '공직생활의 밝은 면'이라는 책의 여백에 적어둔 것이다. 블랙박물관은 스원슨 경감의 증손으로부터 이 책을 박물관 소장품으로 기증받았다.

스원슨 경감은 이 메모에서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폴란드인 아론 코스민스키가 분명하다는 확신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코스민스키를 잘 아는 사람이 그가 범죄 용의자라는 사실을 확인해줬으나 "자신의 증언으로 유대인인 코스민스키가 살인죄로 기소돼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는 것 때문에 마음에 부담을 갖기 싫어 증언 하기를 거부했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누이를 칼로 공격하다 경찰에 체포돼 비밀리에 신문을 받기도 했던 코스민스키는 결국 정신병 요양원에서 사망했다고 스원슨 경감은 말했다. 정신병원의 기록이 맞을 경우 코스민스키는 1919년까지 살았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범죄 전문가들은 코스민스키가 지금까지 나온 잭 더 리퍼에 대한 묘사와 많이 닮아서 놀랐다며 새로운 주장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가 과연 누구인지를 둘러싼 논란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잭 더 리퍼의 후보자로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앨버트 빅터 왕자로부터 1891년 독감으로 사망한 클래런스 공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롤까지 여러 사람이 거론됐다.

미국의 유명한 여성 추리소설 작가 패트리샤 콘웰은 인상파 화가 월커 시커트가 잭 더 리퍼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개인 돈 600만달러를 들여 조사한 뒤 '살인마의 초상화: 잭 더 리퍼, 수사 종결'이라는 논픽션책을 내기도 했다


 
5.블라드 체페슈(Vlad ?epe?) (15세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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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큘라성에 걸려있는 블라드 백작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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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투르쿠군 포로를 쇠꼬챙이에 찌르는 모습을 보며 만찬을 즐겼다 한다.

'블라드 체페슈(Vlad ?epe?)'. 그의 원래 이름은 '블라드 3세(Vlad III)'이며, '체페슈'라는 명칭은 그의 성씨가 아니라 별명이다. 하지만 이 체페슈라는 별명은 그의 사후에 주로 불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드라큘라'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그 스스로도 이 별명을 더 마음에 들어 하여 스스로도 드라큘라라는 별명을 많이 사용한것으로 추정된다. 이 드라큘라라는 별명은 그의 아버지인 악마공 '블라드 2세 드라쿨'에서 유래한것으로, 루마니아어로 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악마라는 단어와도 동음이의어이므로 그가 악마공으로 불리는 것도 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블라드 3세는 용의 아들이라는 뜻인 드라큘라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가 흡혈귀 드라큘라의 모델로 불리게 된 것은 그가 전쟁포로들을 잡아 잔인하게 처형하는것을 즐겼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원성을 사기도 하였는데, 그 잔인한 처형 방법이란 바로 포로들을 말뚝에 박아서 죽이는 것으로, 그는 다른 처형 방법보다 이 처형 방법을 특히 자주 사용했고, 또한 포로가 말뚝에 박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여흥삼아 보기도 하였다는 이야기로 인해 그는 피를 즐기는 잔인한 군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때 그가 사용한 말뚝을 루마니아어로 체페쉬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그의 별명인 체페슈가 유래되었다. 흡혈귀를 죽일 수 있는 방법 중에 심장에 나무 말뚝을 꽃으면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체페슈의 이런 방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또한 블라드가 죽은 후에 오스만군은 그의 사체를 소금에 절인 후에 햇빛에 쬐었다고 하는데, 훗날 사람들이 그의 무덤을 파보니 관 속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일화들로 인해 블라드에 관한 전설이 여러가지로 부풀려서 전해졌고, 그 때문에 후에 드라큘라에 관련된 이야기에 블라드 체페슈를 연상시키는 여러가지 설정이 덧붙여졌을 것이다.

 

 
 
6.바토리 백작 (16세기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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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들로 부터 피를 뽑아낼 때 사용하였다는 고문기구 '철의 처녀'

 
16세기경 실존했던 엘리자베스 바토리 Elizabeth Bathory는 너무나도 유명한 "피의 여왕"이다. Elizabeth Bathory는 1560년 Transylvania (현재 루마니아 서북부의 고원지방)에서 가장 유서깊고 부유하며 영향력있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집안엔 군주나 추기경도 있었고, 사촌은 헝가리 왕국의 수상이었다. 가장 유명한 친척은 Istvan Bathory (1533-1586), 1575년 부터 86년 까지 트란실바니아의 군주였으며 폴랜드의 왕이었다. 
Elizabeth Bathory는 4살이나 5살 때 경 극히 심한 발작을 일으켰었다고 한다. 집안의 근친결혼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유전질환인 간질이거나 기타 다른 신경 계통 질환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훗날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 행위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15살 때 Bathory는 Ferencz Nadasdy 백작과 결혼을 하는데, 백작은 당시 26살이었고,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부는 Csejthe (체터) 성에 살았으며, 백작은 투르크와의 전쟁때문에 거의 떨어져 지냈다.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용감한 남편 Ferencz 백작은 헝가리의 검은 영웅 (Black Hero of Hungary)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렇듯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때문에 외로워진 Bathory는 젊은 남자와 수많은 염분이 났다. 또한 Thorko라는 하인이 Bathory에게 신비주의, 악마숭배 등등의 것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athory는 언젠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가 한참 후에나 성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편인 백작은 쉽게 이를 용서했다고 한다. 
거의 남편과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도 갖지 못 했고,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딸 Anna를 낳았고, 다음 9년 동안엔 딸 Ursala와 Katherina를, 그리고 1598년에야 비로소 외아들 Paul을 낳았다. 
바로 이 기나긴 기간 동안 Bathory는 유모인 Ilona Joo, 집사 Janos Ujvary, 하인 Thorko, 숲에 사는 마녀 Darvula와 또 다른 마녀 Dorottya Szentes 등과 함께 수시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진짜 끔찍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남편의 죽음이었다. 남편 Ferencz 백작은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했고, Bathory의 남성편력또한 심해졌다. 
평소에 무척 미워했던 시어머니를 성에서 쫓아내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든다. 처음엔 말이나 동물들을 제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인간 제물을 바쳤다고 하는데,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진정한 목적은 젊음을 되찾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고 있는 것에 초조하던 Bathory는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면 예전의 고운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가 실수로 머리를 심하게 당기자, Bathory는 하녀의 얼굴을 마구 구타했고 그녀의 손톱에 하녀의 얼굴이 긁혀 피가 나왔다. 하녀의 피가 Bathoty의 손에 떨어졌고, 이를 씻던 와중에 Bathoty는 순간적으로 손의 피부가 고와진 것을 느꼈다. 젊은 처녀의 피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해답이라 생각한 그녀는 수시로 처녀를 잡아다 죽여서, 그 피로 목욕을 했다. 이때부터 Bathory는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발목을 밧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끔 아름다운 처녀 아이가 잡혀오면 특별 메뉴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 나중에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빨아마셨다고도 전한다. 
그녀의 특별한 재미를 위해 허공에 매달아놓은 철창에 처녀를 집어넣고 쇠꼬챙이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여, Bathory가 그 철창 밑에 서서 아래로 흐르는 피로 샤워를 했다고도 한다.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 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문을 통해 적의 정보를 캐내는 것이 빈번했던 당시 전쟁덕분에 Ferencz 백작또한 많은 고문기구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극악한 고문기구중 하나를 이용해 처녀들을 고문하는 것이 Bathory의 취미기도 했다. 고문은 결코 단시간에 끝나지 않고 어쩔때는 수주일간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1600년 부터 1610년 까지 Bathory는 끊임없이 젊은 처녀를 살해하여 모종의 악마의식을 거친 후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지, 시체를 근처 교회로 보내 신부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까닭없이 실종된 처녀의 수가 너무나 많아지자 그 신부는 더 이상 장례를 치뤄주지 않았고, 소문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Bathory는 신부를 불러다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 하도록 친히 협박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녀의 피는 처음 만큼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게다가 농촌 처녀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어 피를 제대로 보충할 수 없었다. 
이에 측근들은 천한 농촌 처녀의 피가 아니라 귀족 처녀의 피라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추겼고, Bathory는 성 내부에 전반적인 귀족적 소양을 가르치는 일종의 '귀족 여학교'를 설립하고 한번에 스물 다섯명씩 학생을 받는다. 물론 이들도 농촌 처녀들 처럼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피를 빨렸는데, 이때 쯤 부터 Bathory는 조심성을 잃었던 것 같다. 시체는 들판이나 헛간, 성 바로 옆 강가, 성 근처 채소밭 등에 아무렇게나 묻었고, 한번은 시체 네구 를 성벽 밑으로 그냥 떨어뜨려 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마침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정부 당국에 신고했기 때문에, Matya 왕은 Bathory의 사촌이며 그 지방 영주인 Gyorgy Thurzo 백작 에게 명하여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1610년 12월 30일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조사팀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에 피가 모두 빠져버린 젊은 여자 시체가 있었고, 꼬챙이에 찔린 채 아직 살아있는 여자도 몇 명 있었으며, 지하실에 내려가보니 온갖 종류의 고문으로 만친창이가 된 젊은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성 주변을 파보니 여자 시체가 50여구나 나왔다. 
재판은 1611년에 열렸지만, 정작 Bathory는 재판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유무죄에 관해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집사인 Ujvary는 처녀 37명을 살해했으며, 그중 여섯은 일자리를 찾아 성에 들어왔던 여자였다고 자백했는데, 대개는 몇주 일 심지어는 몇 달 동안이나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자백은 그러했지만, 실은 총 630-660명을 죽였다고 한다. Bathory는 모든 것을 일기에 써서 기록에 남겼고, 숫자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Erzsi Majorova도 처녀를 공급하는 댓가로 돈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받았다.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정작 Bathory는 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목숨을 건졌다. 대신 Bathory는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이었다고 한다. 
감금 4년만인 1614년 8월 말, 54세의 나이로 Elizabeth Bathory는 어두운 감방에서 세상을 떠난다. 죽기전 Bathory는 재산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골고루 분배해 줄것을 2명의 성직자에게 구술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그녀의 시신은 그곳에 묻힐 수 없게 되었고, 그녀가 Ecsed 혈통의 마지막인 것을 감안하여 헝가리 동북부 지역의 Ecsed에 묻혔다. Bathory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 dism과 흡혈귀의 소재로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Bathory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은,
첫째, Elizabeth Bathory는 엄청나게 미인이었으며, 천사처럼 선해보이는 용모였고, 특히 피부가 거의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우유빛이었다고 전한다.
둘째, Bathory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여자였을 뿐 아니라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엄청나게 똑똑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헝가리 군주들이 거의 글을 읽지 못했던 반면, Bathory는 헝가리어, 라틴어, 로마어에도 능통했으며 지적 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었다고 전한다.
셋째, 그녀가 죽은 후에도 100년 이상 Bathory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을 만큼, 악명이 하늘을 찔렀다.
넷째, Bram Stoker의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군주 Vlad Dracula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 실은 Elizabeth Bathory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다.
다섯째, Elizabeth Bathory 백작 부인의 재판 기록은 아직도 헝가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여섯째,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으며, 주로 슬로바키아 출신 하녀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름 대신 'The Hungarian Whore'(해석하자면 "헝가리 갈보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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